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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ild has one intuitive aim: self development

임종심리

1. 동반자로서의 죽음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죽음으로부터 도망하고 싶은 욕구, 즉 영원히 살아보고 싶은 강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현대 상업주의는 이런 인간들의 심리를 잘 이용한다. 그래서 인간의 장수를 가능케 하는 상품에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자한다. 그러나 인간은 아무도 죽음의 사신을 피할 수 없다.
“테헤란의 죽음(Death in teheran)”이라는 우화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던져준다. 페르샤의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권세있는 부자가 하루는 하인 한명을 거느리고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하인이 비명을 질렀다. 그가 말하길, ‘방금 죽음의 신과 마주쳤는데 자신을 데려 가겠다’고 위협하더란다. 이에 하인은 주인에게 ‘주인의 가장 빠른 말을 빌려 달라’고 다급하게 애원했다. 말을 빌려 주면 그 말을 타고 오늘밤 안으로 도달할 수 있는 테헤란으로 도망을 치겠다는 것이다. 주인은 순순히 승낙하고 자신의 말을 빌려주었다.
하인이 허겁지겁 말을 타고 떠난 뒤, 주인은 발길을 돌려 집안으로 들어가는데 마침 죽음의 신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래서 주인은 죽음의 신에게 물었다.
“어째서 그대는 나의 하인에게 겁을 주고 위협까지 하느냐?”
고 꾸짖자, 죽음의 신이 대답하기를,
“저는 그를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늘 밤 테헤란에서 그와 만나기로 계획을 세워 놓았는데 아직도 그가 이곳에 있는 것을 보고, 단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을 뿐입니다.” 라고 하는 이야기다.

아무리 죽음에서 도망치고자 하여도 언젠가는 삶 뒤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필연적인 손님이다. 우리는 모두 무기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있는 사형수나 다름없는 사람들이다. 독일 시인 릴케는 ‘인생이란 죽음이 잠시 빌려준 생명’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삶을 다시 죽음으로 돌려주어야 할 필연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말에 어르신네가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는 원래의 본 자리로 되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과 알렉산더는 33세 똑같은 나이에 죽었다. 예수님은 인류에게 진리와 빛을 주어 영원한 기쁨과 생명을 주었던 반면, 한 인간은 이 세상을 정복하려고 죄업만 짓다가 인생의 의미도 모른 채 죽었다. 알렉산더가 그리스를 정복하고 동방원정을 이루고자 치룬 많은 전쟁 속에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에게 피를 흘리게 했으며 그 가족들뿐만 아니라 피정복 국가의 아픔은 얼마나 컸을 것인가? 또한 중국의 진시황제는 신하들에게 불로초를 구해오게 하는 법석을 떨었지만 결국 50세도 못 넘기고 이 세상을 하직했다. 그러니 초로의 평범한 노인도 이 세상을 호령하는 영웅호걸도 결국 죽게 되어있다. 죽음을 이기는 방법은 죽음을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것 뿐이다.

2. 임종의 유형

1) ‘안 죽어’ 형
이 형에 속하는 사람들은 평생 동안 죽음을 거의 생각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도,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겼던 무감각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 한 마디로 건강 했을 때는 물론이고 병들어 죽게 되어서도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2) ‘왜 죽어’ 형
임종을 맞는 환자들 가운데 두 번째로 볼 수 있는 모습은 분노를 터뜨리면서 죽어 가는 형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는 죽어야 할 이유가 없는데 왜 죽어야 하는지 억울해하는 심리를 갖고 있다. 이들은 자기는 죽을 이유가 없는데 누군가가 잘못해서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대상은 배우자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 자기를 괴롭혀 온 어떤 사람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이 될 수도 있다. 이런 환자들을 보면 살아오는 동안에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고 죽는 순간까지도 그 상처를 정리하지 못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일생 동안 쌓여 온 응어리가 인생의 마지막에 폭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3) 간청형
임종을 맞는 세 번째의 유형은 죽음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뉘우침은 순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해 보고 싶은 욕구일 가능성이 높다.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오는 죽음을 인간의 흥정으로 연기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서 인간이 죽는 것은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4) 절망형
절망형은 죽음 앞에서 충격을 너무 크게 받고 정신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까지 큰 어려움을 많이 겪지 않고 죽음과도 비교적 상관없이 살아온 사람들이다. 인간의 참 모습은 죽음 앞에서 보여진다. 인간은 평소의 삶도 잘 살아야 하지만, 죽음의 순간에도 여유를 가지고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교육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다른 사람들을 교육해야 하지만, 마지막 가는 모습을 통해서도 큰 가르침을 남겨야 한다.

5) 승리형
승리형은 임종 앞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이들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이웃집에라도 가는 것처럼 여유가 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용기가 자리잡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자신과 하늘 앞에서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사람들은 그 만큼 삶을 진실되게 살아가려는 용기도 가지고 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박해할 때에 기독교인들은 담대하게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된다는 것은 때가 오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긴 것은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3. 죽음의 심리적 단계

1) 부인 단계
많은 환자들이 병원에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진단을 듣게 되면, ‘아니야!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 날 리가 없어!’ 라는 첫 번째 반응을 보인다. 분명한 사실인데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2) 분노 단계
죽음이 거부할 수 없는 실존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기 시작하면서 “하필이면 왜 나한테 이런일이 ….”라는 질문과 함께 분노의 감정이 일기 시작한다.

3) 타협 단계
마음속에 쌓였던 분노의 감정이 어느 정도 발산되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이때부터 자신의 힘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죽음의 실체를 실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죽음을 다스릴 수 있는 어떤 힘에 매달리게 된다.

4) 우울 단계
환자는 점점 자신이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힘으로는 물론 누구의 힘으로도 죽음의 현실을 물리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이제는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

5) 용납 단계
이제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문 밖에 세워 두었던 죽음의 천사를 집안으로 맞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반가워서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에 맞아들인다.

4. 임종자를 위한 상담

1) 죽음을 위한 예방 상담
(1) 죽음과의 대화와 일기쓰기
큐블러 로쓰 교수 지도하에서 1년 동안 죽음에 대해서 공부한 적이 있다. 그 당시 큐블러 로쓰 교수가 우리에게 부여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1년 동안 매일같이 죽음과 나눈 대화를 일기로 써서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2) 묘비명 쓰기
건강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일깨워 주는 좋은 방법으로, 자신이 죽었다고 상상하고 자신의 묘비명을 스스로 써 보게 하는 방법이 있다. 이런 죽음 프로그램은 소그룹 단위로 진행되면 효과적이다.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눈을 감고 자신이 죽을 나이를 상상해 본다. 70세든 80세든 나이는 자기 마음대로 정한다.

(3) 죽음의 관
교회의 신앙 수련기간이나 소그룹 훈련기간 또는 천주교의 피정기간에 시도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동료가 염을 한 후 관 속에 들어가서 죽음을 실감해 보는 것이다.

(4) 무덤 속의 명상
시도하기가 좀 어려운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죽음 훈련으로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여유만 있다면 교회의 정원 한 곳에다 무덤을 만들고 무덤 안에 관을 비치한다. 그리고 그 속에 들에가 누워서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보게 한다.

(5) 죽음에 대한 설교
청중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듣기 싫어한다. 청중의 무의식 속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2) 죽어 가는 자를 위한 임상상담

첫째, 죽음을 부인하는 단계
인간은 누구나 죽음의 순간에 내적, 외적으로 정리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환자는 모든 문제를 남겨 둔 채 세상을 뜨게 된다.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누적된 문제를 정리하지 못한 임종을 맞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행한 임종의 모습을 보여준다.
상담과정에서 상담자는 환자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환자에게 삶과 죽음이 모두 하나님의 섭리에 속한 것이며, 큰 은총이라는 사실을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상담자가 하나님의 뜻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 분노의 단계
이 단계는 ‘왜 내가 죽어 형’에 해당하는데 자신의 마음속에 쌓인 감정들을 쏟아놓는 단계이다. 죽음을 동반자로, 그리고 친구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의식 속에 깔려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먼저 정리되져야 한다. 마음속에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한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세 번째 타협과 간청의 단계
마음속의 응어리가 어느 정도 풀린 후에는 자신을 되돌아 보는 여유가 생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람들에게 잘못한 것과 하나님에게 잘못한 것들이 밤하늘의 샛별처럼 떠오르기 시작한다.
상담자에게는 이 단계가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환자가 어떤 맹세를 해도, 그 맹세를 실행에 옮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환자가 하나님에게 서약하든 인간에게 서약하든 그 서약을 뒤로 미루지 말고 바로 실행에 옮기도록 도와야 한다.
예를 들어 환자가 지금까지 십일조 헌금을 이행하지 못한 것을 뉘우치면서 회복되면 꼭 십일조 헌금을 준수하겠다고 서약을 한다면 상담자는 그 자리에서 봉투를 주면서 양심 십일조를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 때 환자의 말대로 환자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린다면 환자는 죽는 순간까지 십일조 불이행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네 번째, 우울과 절망의 단계
이 단계의 환자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 단계의 환자들에게 성직자는 큰 의미를 가지는 상담자이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죽는 날까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 비밀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수치스러운 비밀일 수도 있고 죄책을 불러일으키는 비밀일 수도 있다. 죽음 앞에 서 있는 환자는 이 죄책감을 용서받고 싶을 때가 있다. 이 때 가장 좋은 상담자는 성직자이다. 우울과 절명 단계의 환자를 상담 할 때는 늦은 오후나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단독 대면하는 것이 좋다. 짧은 시간에 비밀스러운 것들이 쏟아져 나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다섯 번째, 용납의 단계
이 단계에서는 환자가 마지막 죽기 전에 마무리 해야 할 것들을 차례차례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유언으로 남길 말이 무엇인지를 물어도 좋다. 환자가 가볍게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이 단계에서 상담자가 해야 할 일이다. 용납의 단계에 다다른 환자는 미소로 죽음을 맞는데, 이때 영안이 뜨여서 자신이 가야할 곳을 보는 환자들도 있다.
한 젊은 여인이 죽어 가면서 목사님과 남편의 손을 꼭 붙잡고 하고 싶은 부탁을 다하고 난 다음 미소를 지으면서 “나는 하나님께로 가요.”라는 말을 끝으로 숨을 거두는 것을 보았다. 용납의 단계란 바로 이런 모습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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